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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나의 하루는

어쩌면 나의 하루는 눈을 뜨기 전에 시작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잠을 자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뒤척임과 두근거림은 잠자리마저 편안케 하지 않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원치 않는 꿈자리의 뒤숭숭함 때문입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 이야기에 나는 한동안 지친 모습으로 아침을 맞습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꿈에도 변하지 않는 경지, 오매일여(寤寐一如)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자나 깨나 같은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숭얼숭얼 거리는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아침을 맞습니다. 도대체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치 한 발은 깊은 수렁에, 한발은 미지의 어둠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낳을 거라는 불안이 꿈속의 나를 괴롭힙니다. 그저 눈만 뜨면 되는 데 여전히 생각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문득 눈을 뜹니다. 새벽입니다. 해의 기운이 창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 나가고 있습니다.   새벽은 경계입니다. 밤과 아침의 경계입니다. 경계라고 하면 한가운데가 아닐까 하겠지만, 사실 이 경계는 계속해서 아침으로 가는 경계입니다. 그래서 새벽을 기도의 시간,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하였을 겁니다. 새로운 물을 길어, 내 정수리에 붓는 시간이라는 비유도 적절합니다. 꽃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정화수(井華水) 한 잔에 내 마음과 기운이 모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합니다. 우물의 물이 정화수의 물이 되고, 정화수의 물이 하늘에 오르며 한 방울의 눈물이 되기도 합니다. 새벽을 잘 보내고 싶습니다. 아침을 잘 맞고 싶습니다.   아침은 태양의 시간입니다. 멀리서 붉은 기운이 차오르면, 동시에 검은 기운은 사라집니다.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시차가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일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오해하는 것은 순서가 있다는 겁니다. 수신한 후에 제가가 있고, 제가가 있은 후에야 치국이나 평천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수신을 하면 세상은 변합니다. 세상은 나의 수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침은 내가 세상에 나오는 시간이고, 내가 세상에 사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제 생활의 시간입니다. 삶의 시간입니다. 고통의 다른 이름은 즐거움입니다. 물론 즐거움의 다른 이름도 고통입니다. 일하는 것이 괴롭기도 하지만,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고통이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비할 데 없는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보다 싫은 이를 만나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가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고, 만나기 싫지만 만나야 합니다.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갑니다.   날이 저뭅니다. 새벽의 붉은 빛과는 사뭇 다른 저녁입니다. 노을빛은 하루의 열기를 담아서 따뜻합니다. 물질의 온도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가 그렇습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리운 사람입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 깊이 가라앉아 있거나 어쩌면 이 순간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원증회고의 만남은 끝이 나고, 애별리고의 고통은 그리움이 됩니다. 그리움도 사랑입니다. 그리움도 기쁨입니다. 그 감정을 새삼 느끼며 마음이 편해집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이제 자야겠네요. 편안한 마음과 편안한 호흡으로 오늘을 되돌아봅니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습니다. 아팠지만 행복했습니다. 눈이 감겨옵니다. 오늘의 잠자리에서는 꿈마저 잃고 싶네요. 나의 하루를 닫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시간 깨달음 경지 오매일여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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